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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성형의 역사 · 원문

코성형의 역사 ④ — 신의 뜻을 거스른 의사, 탈리아코치

코원성형외과

코성형의 역사 ④ — 신의 뜻을 거스른 의사, 탈리아코치

16세기 유럽은 코를 잃은 사람이 유난히 많았던 시대였습니다. 흥미롭죠. 중세기의 유럽이라고 하면 뭔가 화려하고 예쁘기만한 첫인상이 떠오르는데 말이죠. 

 

두 가지 이유가 겹쳤습니다. 레이피어를 이용한 결투가 유행했고, 15세기 말부터 유럽에 퍼진 매독이 코를 무너뜨렸습니다.

 

이 시대에 코 재건술을 체계화한 사람이 볼로냐 대학의 외과 교수 가스파레 탈리아코치(1545~1599)입니다. 

그는 위팔 안쪽의 피부를 떼어내 코를 만드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팔을 얼굴에 붙인 채로 고정해두었다가, 혈류가 자리를 잡으면 팔을 떼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훗날 '이탈리아식'이라 불리게 됩니다.

 

1597년 그는 『이식을 통한 결손 부위의 외과적 복원』을 출간합니다. 

성형·재건 외과를 다룬 최초의 단행본으로 꼽히는 책입니다.

 

그가 이 책에 남긴 문장이 있습니다.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잃어버린 것을 되돌린다는 취지의 대목입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성형외과를 대표하는 문장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짚어둘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사후에 파문당했고 유해가 파헤쳐져 비성지에 다시 묻혔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신이 만든 것에 인간이 손댔다"는 이유로요.

신성모독이죠. 

 

사실 글을 쓰려고 사료를 확인해보니 이 서술은 자료마다 엇갈리기는 하더군요. 

그가 유언대로 성 조반니 바티스타 성당에 묻혔고 동료 의사들이 참석한 추도 미사까지 치러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반면 이후 교회의 지시로 이장됐다고 전하는 서술도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사후 이탈리아식 코 재건술이 오랫동안 유럽 의학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19세기에야 다시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기술이 사라진 데에는 당대의 따가운 시선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인데 함부로 고쳐도 되는 걸까." 이 질문은 이렇게 오래됐습니다. 

제 진료실에서도 이런 말을 꺼내는 분들은 매일 계십니다. 400년 전 유럽에서도 같은 질문이 오갔다고 생각하면, 그 망설임이 조금은 다르게 보입니다.

 

확실한것은 그 결정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 크게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제가 환자분들께 수술을 함부러 권유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 진료실에는 강요도, 권유도 없습니다. 

모든 결정의 주체는 환자분이 되어야 합니다. 

 

 

 


  • Tagliacozzi G. De Curtorum Chirurgia per Insitionem. Venice, 1597.

 

  • Santoni-Rugiu P, Sykes PJ. A History of Plastic Surgery. Springer, 2007. (탈리아코치 생애 및 사후 논란 서술 근거)
  • (이하 생략)

    본 글은 위 문헌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일부 역사적 서술은 자료에 따라 연대·세부가 다를 수 있고, 한계가 있어, 본문에 그 점을 함께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