鼻整形的历史 · 原文
코성형의 역사 ⑦ — 자크 조셉, 그리고 코모양이 낙인이 된 시대
코원성형외과
本文显示韩语原文,译文尚未发布。
코성형의 역사 ⑦ — 자크 조셉, 그리고 코모양이 낙인이 된 시대
'현대 코성형의 아버지'로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베를린의 자크 조셉(1865~1934)입니다.
1898년 5월, 그는 베를린 의사회에 한 증례를 보고합니다.
코가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리던 남성 환자를 수술한 사례였습니다.
조셉은 시신의 코로 먼저 연습한 뒤 수술에 들어갔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여기서 흔히 잘못 알려진 부분을 짚고 갑니다. 1898년의 이 수술은 코 바깥을 절개하는 방식이었고 흉터가 남았습니다.
코 안쪽 절개로 매부리코를 교정한 내용을 조셉이 발표한 건 1904년입니다.
즉 폐쇄형, 비개방형 코수술의 (코 안쪽 접근)의 최초 발표자는 조셉이 아니라 앞서 소개한 로였고, 조셉은 그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 사이엔 훗날 우선권을 둘러싼 앙금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조셉이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는 1898년 보고에서 미용 수술의 심리적 효과가 신체적 결과만큼 중요하다는 견해를 함께 제시했습니다.
외모를 바꾸는 일이 그 사람의 정신과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의학적으로 설명하려 한 초기 시도였습니다.
이 대목엔 시대의 무게가 있습니다. 조셉 본인이 랍비의 아들로 태어난 유대인이었고, 당시 독일에서는 코 모양이 유대인을 식별하는 표식처럼 취급됐습니다.
그의 환자 중 상당수가 베를린 유대인 사회 사람들이었습니다. 조셉이 '유대인 코'로 고통받는다고 판단한 사람은 무료로 수술해줬다는 증언도 남아 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건 1934년입니다. 그 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우리가 아는 대로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마냥 미담으로 읽기가 어렵더군요.
코 하나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해버리는 시선이 먼저 있었고, 수술은 그 시선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으니까요.
바뀌어야 했던 건 코였을까, 사회의 시선이었을까.
100년이나 지났는데, 지금도 완전히 남의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료실에서 "이 코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본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씁쓸한 일이지요.
- Joseph J. 코성형 증례 발표, 베를린 의사회, 1898.
- Joseph J. Nasenplastik und sonstige Gesichtsplastik. 1928–1931.
- Gilman SL. Making the Body Beautiful: A Cultural History of Aesthetic Surger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9. (유대인 코, 심리적 효과, 무료 수술 증언 서술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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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생략)
본 글은 위 문헌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일부 역사적 서술은 자료에 따라 연대·세부가 다를 수 있고, 한계가 있어, 본문에 그 점을 함께 밝힙니다.
